파도가 인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하늘이 나를 감싸고 있다.
그 하늘에 대고 숨을 쉰다. 높은 하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온도는 적당히 알맞다. 적당히 시원해서 너무나 달콤한 바람이 나를 품어간다.
녹색이 잔뜩 남은 잔디언덕 정상에서 자유를 긍정한다.
‘난 휴식이 필요해.’
어디론가 가 버린 내 오랜 여자친구의 말이다.
그녀는 정말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휴식이란 자유가 아닌 게 문제였다. 그녀는 내려놓을 줄 모르는, 손에 항상 무언가를 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아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자유를 노래하지만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그런, 슬픈 사람.
그런 그녀가 하루는 정말 지쳐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와 내 가슴에 대고 울먹이며 말 했다.
‘난 휴식이 필요해’
',,,,,,'
‘하지만 할 수 없다니까’
그녀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아 주는 것뿐이었다.
한참을 오열하다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버린 그녀는 대외적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 없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카드로 만든 조형 물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닮았다. 스스로를 높게 쌓아 올리느라 중간 중간 비어버린 부분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부서지기 쉬운 모습이 되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지만.
도시는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아주 위태로운 곳이 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 그녀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는 조금 더 정도가 심할 뿐이다. 이곳 도시에서는 평범한 보통의 부서지기 쉬운 사람.
한 때는 그런 그녀를 채워보려 노력도 했었다. 빈 부분에 내가 들어차는 순간 다시 흘러내려 같은 모습이 되는 걸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자신이 없어졌다. 그녀를 채울 수 있다고 자신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될 뿐이었다.
어느 날 그런 그녀가 날 떠났다. 말 한 마디 없이 더 이상 내 집에 오지 않게 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단지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어디론가 떠난 날 스스로는 자유로워 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그녀를 생각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생각하는 척 할 뿐인지 모른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어느 날 여행을 떠나 흘러 다니고 있다. 난 단지 지중해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복잡한 건 싫다. 그냥 이런 시골마을에서 지중해를 마냥 바라보고 있는 게 좋을 뿐이다.
하얀 거품이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하루 종일 달리는 것이나 물결 따라 석양이 지는 것이나 슬프도록 시린 별빛이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이나 모두 삶의 기쁨이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살아왔지만 이제야 한층 더 삶이 느껴지는 장소에 서 있으면 그 것으로 머리가 비어버릴 것 같아 즐겁다.
언젠가 지중해가 질리는 날에 다시 흘러 다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음에 꿀 꿈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무척 궁금하다.
그래서 이곳에 섰다. 아직 녹색이 잔뜩 남은 잔디언덕 정상에. 적당히 몰아치는 파도에 적당히 시원한 바람에 적당히 따뜻한 햇볕, 하지만 하늘은 적당하지 않다. 보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수평선도 역시 적당하지 않다.
끝없음.
자유로운 적당하지 않음.
끝없는 푸름.
이것이야 말로 자유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한다.
지표 따위는 필요 없다. 단지 저것이 푸르다는 것으로 나는 자유를 이해한다. 내 삶을 긍정한다.
그녀는, 자유로워 졌을까? 혹시 아직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도시스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세상에는 자유를 찾아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고 그들은 손에 닿지 않는 자유를 추구해 무너질 것이라는 거다.
자유는 하늘의 끝, 그리고 수평선 너머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찾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긍정함으로 얻는 것일 테다.
- 태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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